제로 신뢰 사회(Zero-Trust Society) — 신뢰가 기술로 대체될 때 발생하는 사회 붕괴

 

1. 신뢰의 붕괴와 기술 대체 시대의 도래

 현대 사회는 기술 발전을 통해 더 정확하고 더 빠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사회적 신뢰 기반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를 믿기보다 기계의 판단을 의존하고, 주변의 관계보다 데이터로 검증된 정보를 우선한다. 이 흐름은 겉으로는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 간 신뢰가 사라지는 제로 신뢰 사회를 만들어낸다.
 제로 신뢰 사회에서는 사람의 행동이 먼저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동이 의심을 전제로 기록되고 검증된다. 인간은 기본적 선의를 인정받지 못하고, 기술 인프라에 의해 지속적으로 감시되고 평가되는 존재가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관계의 자연스러운 여지를 찾기 어렵고, 사람의 행동은 늘 ‘의심의 기계’를 통과해야만 한다.
 문제는 사회적 신뢰가 약해지면 인간 공동체가 유지되는 기반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협력은 감소하고, 공동체는 파편화되며, 사회적 충돌 가능성은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기술은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파괴하는 중심 인프라가 된다. 이런 환경에서 인간은 안전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류 없는 기술’이 사람을 불완전한 존재로 규정해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사회 구성원이 아니라 세밀하게 통제되는 대상으로 변한다.

 

2. 기술이 신뢰를 대체할 때 발생하는 사회적 부작용

 제로 신뢰 사회가 확대되면 사람의 모든 행동은 기술적 검증을 통해 해석된다. 이 구조에서 기술은 판단 기준이 아니라 규칙이 되고, 규칙은 사람의 행동을 관리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그때부터 인간은 ‘신뢰받기 위해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심받지 않기 위해 행동하는 존재’로 바뀐다.
 이런 변화는 사회적 부작용을 확산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을 증명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고, 행동의 자연스러움은 점차 사라진다. 개인의 실수는 배려받지 못하고 시스템 오류처럼 처리되며, 사소한 오해조차 알고리즘 기록으로 남아 다음 판단에 영향을 준다. 인간의 구체적 맥락은 지워지고, 데이터가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은 “이상 행동”으로 분류되는 일이 빈번해진다.
 또한 제로 신뢰 환경에서는 사회적 갈등이 빠르게 증가한다. 사람들은 서로의 진심보다 ‘나를 감시하는 데이터 체계’를 먼저 떠올리고, 상대가 나를 평가하고 있을 것이라는 압박을 느낀다. 관계의 목적이 이해가 아닌 자기 보호로 바뀌면서 협력은 약화되고 적대성은 강해진다.
 기술이 신뢰를 대신하는 순간, 사회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해진다. 인간은 감시를 피하기 위해 몰래 움직이고, 공동체는 부서지고, 국가 시스템은 점점 더 강한 감시를 요구하는 악순환으로 빠져든다. 제로 신뢰 사회는 결국 효율성을 얻는 대신 인간적 연결을 잃는다.

 

3. DID 기반 신뢰 재구성의 필요성과 새로운 사회적 기준

 제로 신뢰 사회에서 인간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신원과 데이터가 중앙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고 자기 통제를 통해 관리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때 DID는 단순한 인증 수단을 넘어, 사회적 신뢰 구조를 인간 중심으로 되돌리는 근본적 도구가 된다.
 DID가 제로 신뢰 사회에서 중요한 이유는 기술 검증을 ‘감시’가 아닌 ‘자기 확신’으로 재해석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신원을 직접 증명하고 기록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검열에 노출되지 않고도 신뢰 과정을 수행할 수 있다. 이 구조에서는 누군가가 무조건 나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신뢰 절차를 선택해 실행하는 방식으로 관계가 이루어진다.
 또한 DID는 신뢰가 기술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신뢰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게 만든다. 예를 들어 거래나 계약 과정에서 DID는 상대를 검열하는 장치가 아니라, 서로 부담을 줄여주는 투명한 증명 도구가 된다. 이 방식은 기술이 인간을 감시하는 구조에서 인간을 보호하는 구조로 바뀌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DID 기반 신뢰 모델이 확산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적 의심의 벽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기계적 감시에 종속되지 않는다. 신뢰가 기술을 통해 강화되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4. 제로 신뢰 사회 이후의 미래와 인간 공동체의 재정립

 제로 신뢰 사회는 기술이 인간의 불완전함을 용납하지 않는 세계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실수하고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기술이 인간의 삶을 지나치게 규격화하면 사회는 더욱 위험해진다. 미래의 지속 가능한 사회는 기술의 정확성보다 인간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로 신뢰 구조가 완전히 자리 잡으면 사람은 판단 능력을 점점 잃고, 선택의 주체가 아니라 ‘감시 체계의 피고’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DID 기반 신뢰 시스템은 이 경로를 반전시키는 힘이 있다. 기술은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는 장치에서, 인간의 신뢰를 돕는 장치로 변하고, 사람들은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고 활용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사회는 신뢰의 두 층위를 갖게 될 것이다. 첫 번째는 인간 공동체의 감정적 신뢰, 두 번째는 DID 기반의 기술적 신뢰다. 이 두 구조가 조화를 이루면 사회는 안전성과 자유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인간은 의심의 감시망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기술과 함께 신뢰를 확장해 나가는 주체가 된다.
 결국 제로 신뢰 사회의 위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를 잃어버린 인간 사회의 문제다. 미래 사회가 건강하려면 기술이 인간을 감시하도록 만들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통해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간의 데이터가 인간에게 속한다는 원칙, 즉 데이터 주권이 자리 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