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D

DID와 개인정보 보호법의 새로운 관계

v4-sr 2025. 11. 5. 22:11

1. 개인정보 보호법과 DID의 등장 배경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의 데이터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적 장치다. 디지털 사회가 발전하면서 개인정보는 단순한 식별 정보가 아닌,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정부와 기업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개인의 정보는 끊임없이 활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데이터 유출, 무단 수집, 부당한 활용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개인정보 보호법 체계가 강화되었다. 유럽연합의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법, 미국의 CCPA(California Consumer Privacy Act) 등은 모두 공통적으로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법적 원칙이 완벽히 작동하기는 어렵다. 사용자는 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여전히 개인정보를 여러 기업에 넘겨야 하고,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알 수 없다. 이때 등장한 기술이 바로 DID(탈중앙화 신원인증, Decentralized Identifier) 이다. DID는 기술적 수단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법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데이터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이다.

 

DID와 개인정보 보호법의 새로운 관계

 

2. DID가 개인정보 보호법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식

 DID는 중앙기관 없이 개인이 자신의 신원정보를 직접 관리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며, 신원을 증명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공개하는 구조를 갖는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성인 인증을 할 때 나이를 직접 공개할 필요 없이, ‘만 19세 이상임을 증명하는 DID 서명’만 제출하면 된다. 이렇게 선택적 정보 공개(Selective Disclosure) 가 가능하다는 점이 DID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기업과 기관이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도록’ 제약을 두지만, DID는 아예 데이터를 중앙에 저장하지 않는 구조로 법의 목적을 기술적으로 달성한다. 즉, 법이 규제 중심이라면, DID는 기술 중심의 해결책이다.
 또한 DID는 개인정보의 사용 이력 추적(Traceability) 도 가능하게 한다. 사용자는 DID 지갑을 통해 자신의 정보가 언제, 어떤 기관에 제공되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기존 법제도가 제공하지 못했던 투명성을 보완한다.
 결국 DID는 개인정보 보호법이 지향하는 “개인 중심의 데이터 통제”를 기술적으로 실현하는 도구다. 법은 원칙을 제시하고, DID는 그 원칙을 현실로 옮기는 실행 수단이 된다. 두 체계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파트너 관계에 있다.

 

3. 블록체인 기반 DID와 법적 충돌 가능성

 DID는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강력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법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블록체인은 데이터가 ‘변경 불가능(immutability)’하다는 특성을 가진다. 한 번 기록된 정보는 네트워크 전체에 복제되어 유지된다. 반면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은 언제든 자신의 정보를 삭제할 권리(잊힐 권리)”를 보장한다.
 이 두 가지 원칙은 겉보기에 상충된다. 블록체인에서는 데이터를 지우기 어렵지만, 법은 지워야 한다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온체인(블록체인 내부)”과 “오프체인(외부 저장소)”의 분리 구조를 제안하고 있다. 즉, DID 시스템은 신원 검증 정보의 해시값만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실제 개인정보는 사용자의 디바이스나 분산형 저장소(IPFS 등)에 보관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법적으로 요구되는 데이터 삭제가 가능해진다. 사용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DID 지갑에서 삭제하면, 해시값만 남고 원본 데이터는 사라진다. 법률적으로도 ‘식별 불가능한 정보’로 간주되어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 아니다.
 따라서 DID는 블록체인 기술의 투명성과 법적 삭제 권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법 융합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향후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 논의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DID의 확산은 결국 법적 해석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게 만든다.

 

4. 법과 기술의 공존, 데이터 주권의 실질적 실현

 DID와 개인정보 보호법의 관계는 대립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이다. 개인정보 보호법은 사람의 권리를 중심으로 설계된 법이고, DID는 그 권리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이다. 이 둘이 결합하면 개인은 진정한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 을 얻을 수 있다.
 정부는 DID를 활용해 행정 데이터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고, 기업은 DID를 통해 개인정보 관리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사용자는 자신의 정보를 스스로 관리하고, 데이터 제공을 통제하며, 필요할 때만 최소한의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동의 기반의 개인정보 제공’을 넘어, ‘자기 주권 기반의 정보 통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다.
 또한 DID의 법적 인정이 확대되면, 국제 데이터 교류의 장벽도 낮아진다. 각국의 개인정보 보호법은 그 내용이 조금씩 달라서 기업 간 데이터 이전이 까다롭다. 그러나 DID는 사용자 중심의 데이터 구조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 충돌을 최소화하며 글로벌 표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DID는 개인정보 보호법의 취지를 기술로 확장시키는 도구다. 법이 인간 중심의 원칙을 세운다면, DID는 그 원칙을 구현하는 구체적 시스템이다. 법과 기술의 결합이 완성될 때, 데이터 주권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질적 권리로 작동하게 된다.